슬픔도 아름답게 승화할 수 있습니다... 『사라지는 윤곽들』 권덕행 시인 인터뷰

여러분의 슬픔이 잘 지내기를 바랍니다... 권덕행 시인이 전하는 詩 이야기

김소은 기자 승인 2022.04.15 00:44 의견 0

[북토리매거진 · 김소은 기자]

현대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어느정도의 슬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 형태가 무엇이든 '사는 것 자체가 슬픔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은 요즘인데요. 오늘 북토리매거진 저자 인터뷰에서는 '슬픔도 아름답게 승화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시집 『사라지는 윤곽들』의 권덕행 시인과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독자에게 전할 메시지를 쓰고 있는 『사라지는 윤곽들』 권덕행 시인


권덕행 시인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선 독자 여러분께 간단한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사라지는 윤곽들』을 쓴 시인 권덕행입니다.
시를 쓸 때는 몰랐는데 시집을 내는 일이 정말 쉬운 일은 아니네요. 이렇게 독자들을 어렵게 만나게 되다니요... 시를 쓰는 순간과 시를 읽는 순간이 일치되는 지금, 저는 무척 설레고 무척 기뻐요.

『사라지는 윤곽들』이 첫 시집이라 들었는데요. 기분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네, 드디어 내 집이 생겼구나, 했어요. ‘시의 집, 시집’ 말이에요.
실체 없는 말들로 떠돌던 내 자음과 모음들에 집이 생겼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흩어졌던 마음들을 여기에 모았습니다. 저는 이것들을 이제 마음껏 쓰다듬을 수 있게 됐고 또 훨훨 떠나보낼 수도 있게 됐어요. 나를 견뎌주어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주변을 둘러보면 다시 詩를 읽고 쓰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은데요. 시인님에게 詩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시를 오래 썼어요. 아니 띄엄띄엄 가늘게 오래 썼다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잘 써질 때도 있었고, 의도적으로 아주 오래 시를 멀리한 적도 있었어요. 그럴 때도 늘 시집은 옆에 끼고 살았어요. 시는 제 글의 원천이었고, 슬픔에도 운율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어요. 슬픔이 각을 잡기 시작하면 얼마나 유려하고 아름답게 승화될 수 있는지, 또 울음도 한 줄의 시가 될 수 있고 그것이 내가 지은 최초의 문장과 최후의 문장이 될 거라는 것을 처연히 알려주었어요. 저는 시에게 제 인생의 많은 것을 들켰고, 많은 빚을 졌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곳에서 뺨을 얻어맞고 시 앞에서 늘 울음을 터트렸네요. 시는 아름답고 경계심이 많은 장르예요. 상처와 불안과 콤플렉스를 어쩌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나와 닮아 있어요.

『사라지는 윤곽들』 권덕행 시인

그렇다면 시인님이 쓴 시 작품은 시인님을 많이 닮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음…. 애매하게 대답해야겠네요. 사실 제 시를 보여주면 이런 질문을 진짜 많이 들어요. “이거 니 얘기야, 이게 너야?” 하고요. 맞아요, 나이기도 하고 내가 아니기도 해요. 한동안 ‘부캐’라는 말을 많이 썼잖아요. 시를 쓴다는 것도 그런 것 같아요, 시의 문 앞에 나의 부캐를 세우고 끊임없이 그 사람이 말하게 해요. 그 사람의 말투를 빌려서 시를 쓰고 그 사람의 슬픔을 빌려서 시를 써요. 그래서 나는 하나이기도 하고 여럿이기도 해요. 그런 내가 쏟아내는 마음이 시인 것 같아요.

작품을 보면, 시인님은 유독 슬픔의 감정에 몰입하는 작품이 많은 것 같은데, 시인님에게 ‘슬픔’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슬픔에도 등급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제 슬픔이 열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슬픔에 대해 잘 얘기하지 않았어요. 말하지 않는 슬픔은 저와 동일시되더라고요. 그런데 이것을 전시하고 나면(쓰고 나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요.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요. 그래서 슬픔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게 돼요. 나는 이제 괜찮다는 ‘슬픔의 타자화’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될 때 내 슬픔은 다른 이의 슬픔과 연결되고 확장되는 것 같아요. 잘 버틴 슬픔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이 시집 『사라지는 윤곽들』에서 시인님은 특별하다고 느끼는 작품이 무엇인가요?

한편 한편을 오래 보듬어 왔던 것 같아요.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고치고 또 매만지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시들이 사실 애틋해요. 그렇지만 마음을 곧추세우게 하는 시가 있어요. 이 시집의 첫 시 「기록에 관하여」와 마지막 시 「식물이 자라는 시간」이라는 시는 시에 대한 제 마음이 담겨 있어요, 첫 시 「기록에 관하여」에서는 나의 모든 중얼거림이 시가 되고, 비문처럼이라도 살아남고 싶었던 마음, 세상 가장 무거운 탄식을 줍고 다니면서도 나를 위로했던 시간이 담겨 있고 마지막 시 「식물이 자라는 시간」에는 아직 살아있지만 좀처럼 싹을 틔우지 못했던 나에 대해 얼마나 버틸 것인가 하고 아프게 물었던 시간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이 시들을 볼 때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시집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시를 썼어요. 그럴 때 나의 시는 일종의 기도와 같았어요. 삶의 모든 얼룩은 기도가 됐어요. 그런 마음으로 같이 읽어 주세요. 제 슬픔은 잘 지내고 있어요. 여러분들의 슬픔도 잘 지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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